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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관(慈觀)과 위빠사나 - 우 자나카 사야도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06-09-02 00:29     조회 : 6955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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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관(慈觀)과 위빠사나


-  20일 집중수행 법문 중1)에서-

  


사단법인 위빠사나 수행처 호두마을

 

 통역/정리 : 정원


1. 자관 수행법

mettā bhāvanā


20일간의 집중수행을 시작하는 날부터 3일간 여러분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행복과 기쁨을 길러주기 위해서 마음에서 사랑을 방사하는 자관(慈觀, mettā bhāvanā)을 먼저 수행할 것입니다.

자관 수행에는 많은 이익이 있습니다. 이번 집중수행은 위빠사나 수행을 위해 마련되었지만 먼저 3일간 자관을 하고 난 후, 자관을 바탕으로 위빠사나 수행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이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에도 15분에서 20분 동안 먼저 자관을 수행한 후 위빠사나 수행을 하기 바랍니다.

먼저 위빠사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수행이지만, 자관의 대상은 자신의 몸과 마음의 현상이 아닙니다. 자관의 대상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 혹은 사람들의 그룹이나 존재의 그룹입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과 자관 수행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관의 대상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 한정되지 않은 대상과, 한정된 대상입니다. 한정되지 않은 대상이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을 말합니다. 즉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입니다. 한정된 대상이란 특정한 사람이나 사람의 집단, 혹은 특정한 존재나 존재의 집단을 말합니다. 먼저 한정되지 않은 대상을 향해서 자관을 일으키는 방법을 말씀드린 후에 한정된 대상을 향해서 자관을 일으키는 방법을 일러드리겠습니다.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잘 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기원하는 것이 자관입니다. 자관을 마음으로 일으키는데 도움이 되는 자관의 문구가 있습니다.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마음으로 간절하게 생각하면서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안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하고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되뇌입니다. 말로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자애를 느끼면서 되뇌입니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편하게 앉아서 마음으로 이 자관의 문구을 외워보십시오.

자관의 대상을 일부러 형상화시키거나 눈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자연스럽게 대상이 떠오르면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의 마음을 자관의 대상을 향해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자관을 수행하면, 마음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때 마음은 평온해지고 고요해지며, 시원한 느낌이 생기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관 수행법을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존경받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계정혜의 삼학(三學)을 갖춘 사람을 선택합니다. 예를 들면, 수행을 지도해주는 스승이나 여러분의 부모님을 대상으로 합니다. 선택된 대상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자관의 문구를 외웁니다.

예를 들면, ‘스승께서 안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어머님이 안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아버님이 안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자관의 대상을 지정해서 자관의 문구를 마음으로 반복합니다.

한 대상을 향해서 5분에서 10분 정도 자관을 해도 마음에 사랑의 느낌이 향상되지 않으면 다른 대상으로 바꿉니다. 만일 사랑의 느낌이 향상되면 15분에서 30분 정도 한 대상을 향해 자관을 지속합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30분이나 1시간 동안의 좌선을 하는 동안 대상을 너무 많이 바꾸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30분 동안 4-5명 이상 대상을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청정도론>>에 한정된 대상을 정해서 자관을 할 때 주의할 점을 말해놓았습니다. 자관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수행자는 먼저 부모님을 제외한 이성(異性)을 대상으로 자관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부부도 이성입니다. 또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관을 처음 시작할 때, 2분정도 자신에 대한 자관을 먼저 하고 난 후에 다른 대상을 향해서 자관을 행합니다. 즉, ‘내 자신이 안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자관의 문구에 자신을 넣어서 자신을 위한 자관을 합니다. 그리고 한정되지 않은 대상이나 한정된 대상을 향해서 자관을 수행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기본적인 자세로 좌선과 행선(걷기 수행) 그리고 일상생활의 동작이 있습니다. 자관도 같은 자세에서 수행합니다. 특히 걷기 수행이나 일상생활의 동작을 할 때, 어떤 수행자는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관이 잘 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수행자는 한정되지 않은 대상을 향한 자관이 잘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두 가지 대상을 향해서 자관을 일으켜보고 잘 되는 대상을 향해서 계속하시면 됩니다.

좌선할 때, 다리가 아프거나, 저리거나, 뻣뻣해지면 다리를 자세를 바꾸어 가면서 자관을 하면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처럼 바꾸는 동작을 알아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걷기 수행할 때나 일상의 동작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리의 동작을 알아차리거나 관찰하지 말고 자관의 문구를 반복하면서 자애심을 방출하면 됩니다.

자관을 닦는 시간은 걷기 수행은 30분 이상하고, 좌선은 적어도 1시간 이상은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관 수행을 잘 해서 모든 괴로움이 소멸한 열반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집중수행 기간 동안 지켜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고귀한 침묵을 지키기 바랍니다. 옆 사람의 집중에 방해되는 소리나 소음을 내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행동은 천천히 하셔야 합니다.


메따 수행(자관)에는 11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1.  편히 잠든다.

2.  편히 잠에서 깨어난다.

3.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다.

4.  사람들이 사랑하게 된다.

5.  사람 아닌 천신들과 동물들이 사랑하게 된다.

6.  천신들이 보호한다.

7.  독극물, 무기, 물, 불 등의 외적인 위험에 의해 해를 받지 않는다.

8.  얼굴에서 빛이 난다.

9.  마음이 평온해진다.

10. 죽을 때 혼란되지 않는다.

11. 죽은 후 범천(梵天)이라는 행복한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자관 수행에 바탕을 두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번뇌를 소멸한 열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처럼 자관 수행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자관 수행을 하면 불면증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1시간 전에 자관 수행을 하면 잠자리에 편안하게 잘 들 수 있고, 악몽에 시달리지 않으며 깨어날 때도 몸과 마음이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 사람 아닌 천신들과 동물들이 사랑하게 된다는 한 일화가 『청정도론』에 나옵니다. 위사카(Visākha) 장로는 출가한 지 5년이 된 스님이었는데 한 곳에 4개월 씩 머물며 자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하며 지냈습니다. 모든 존재들에게 자관 수행을 하는 위사카 스님을 사람은 물론 동물들도 사랑하여 아무런 위험 없이 숲 속에서 수행하며 지냈습니다.

위사카 스님은 남부 스리랑카의 숲 속에 있는 수행처인 찌딸라빠바따정사(Cittalapabbata-vihāra)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4개월 동안 수행하고 이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던 때였습니다. 깊은 밤, 숲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곳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누가 거기서 울고 있느냐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천인이 나타나 자기는 이 숲의 나무에 살고 있는 천인(deva)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왜 우느냐는 스님의 질문에 스님이 이제 이곳에서 떠나려고 하시니 그 때문에 울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은 내가 떠나는데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인은 ‘스님이 이곳에 오시기 전에는 이곳에 살고 있는 천인들이 날마다 서로 싸우고, 말다툼하고 헐뜯고 지냈기 때문에 편치 않았으나, 스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자관 수행을 하신 이후, 그 자관의 힘으로 천인들도 서로 메따를 보내게 되었고, 그 덕에 이제는 싸우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고 한 후, 이제 다시 스님께서 이곳을 떠나시면 다시 메따를 잃게 되어 우리들은 싸우면서 지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천신은 울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본 후, 위사카 스님은 4개월 간을 더 머물 것을 결심하고 4개월 동안 자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다시 4개월이 다 되자 스님을 떠날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천신이 또 우는 일이 일어났고, 스님은 다시 4개월을 더 머물렀습니다. 이렇게 위사카 스님은 입적하실 때까지 이 절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청정도론>>에 설명된 이야기입니다.


버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80여년전에 자관 수행으로 유명하셨던, 우 실라라는 큰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은 숲 속의 작은 오두막(kuti)에서 지내셨는데, 이곳은 야생 동물이 늘 지나다니는 곳이었습니다. 야생의 코끼리, 맹수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지내면서도 아무런 위험 없이 지내셨습니다. 이 스님의 자관 수행 때문에 짐승들도 스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교도이거나 불교도가 아니거나 이 자관 수행을 가능한 한 많이 닦아야 합니다.


자관 수행을 통해 얻은 깊은 마음집중은 위빠사나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사마타 수행을 전제로 한 위빠사나 수행(samathapubbangama-vipassanā)이 있습니다. 1일, 2일 3일 또는 1개월 동안 마음을 집중시키는 사마타 수행을 닦은 후에 집중된 마음을 바탕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닦는 방법입니다. 사마타 수행의 방법은 <<청정도론>>에 40가지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이 있습니다.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바라는 자(慈, mettā), 연민의 마음인 비(悲, karunā), 고마워하고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인 희(喜, muditā), 평정한 마음인 사(捨, upekkhā)가 사무량심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번 집중수행동안 자관 수행을 사마타 수행으로 먼저 닦고 난 후에 위빠사나 수행을 닦기 때문에 자관 수행이라는 사마타 수행을 전제로 한 위빠사나 수행를 닦는 것입니다.  사마타 수행을 하면 근접정(近接定; upacārā-samādhi) 또는 안지정(安止定; appanā-samādhi, jhāna) 같은 깊은 마음집중(삼매 또는 定)을 얻게 되고 이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 마음집중을 통해 마음의 청정(citta-visuddhi)을 이룹니다. 이를 바탕으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 되는 것은 사마타 수행을 전제로 한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합니다. 


또 한 가지 위빠사나 수행법은 순수한 위빠사나 수행(suddha-vipassanā)입니다. 순수하다는 말은 다른 사마타 수행이 섞여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즉 수행의 처음부터 곧 바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직접 닦아가는 수행입니다. 지속적이며 세심하고 정확한 마음챙김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의 현상을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알아차립니다. 마음챙김(sati)이 있으면, 마음집중(samādhi)이 이루어집니다. 순수 위빠사나 수행할 때의 마음집중은 순간적인 마음집중인 찰나삼매(khanika-samādhi)입니다. 이 찰나삼매에 의해서 마음의 청정(citta-visuddhi)을 이룹니다. 찰나삼매에 의해 마음이 청정해지면 위빠사나 지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위빠사나 수행방법은 좋은 방법이나 사마타 수행을 전제로 한 위빠사나 수행이 더 좋습니다. 사마타 수행을 통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하며,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게 되고 이 좋은 경험들은 마음집중을 이루게 해줍니다. 이 마음집중을 이룬 상태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기 때문에 사마타를 전제로 한 위빠사나 수행이 더 좋습니다. 따라서 지금 자관 수행이라는 사마타 수행을 먼저 닦고 난 후에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자관의 방법은 어제 말씀드렸듯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대상을 한정하지 않는 자관 수행입니다.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마음으로 간절하게 생각하면서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안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하고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되뇌입니다.


다음은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관 수행입니다.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관 수행을 할 때, <<청정도론>>에 의하면 자관 수행의 초보자에게 부적합한 다섯 대상이 있습니다. 처음 자관 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다섯 대상을 한정해서 자관 수행을 하면 안 됩니다.

먼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 그 대상이 어려운 상황에 있거나 아프거나, 고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수행자의 마음도 불편해지고 안정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메따의 느낌도 생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관 수행이 향상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정된 대상으로 해서 자관 수행을 해도 좋습니다.

두 번째 대상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 중립적인 사람입니다. 중립적인 사람에게는 메따의 느낌이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피곤해집니다. 메따가 부족해서 피곤해지면 수행이 잘 안됩니다.

세 번째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한정된 대상으로 했을 때, 사랑의 느낌이 일어나기 전에 미움이나 분노가 일어나게 되고 이 분노를 초보자는 컨트롤할 수 없게 됩니다. 수행이 향상되면 미워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자관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대상은 이성(異性)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또는 이성의 파트너를 대상으로 했을 때, 메따의 느낌이 생기기 전에 번뇌인 감각적 욕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는 대상으로 해도 좋습니다.

다섯 번째는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집중을 이루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청정도론>>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지만,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업에 따라 천상에 태어날 수도 있고,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있으며, 삼악도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정확하게 어디에 태어났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향한 자관 수행은 집중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위의 다섯 대상을 제외하고, 처음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관 수행을 하는 초보자의 경우는 특별한 대상이 없을 때, 존경할 만한 스승 특히, 계정혜 삼학(三學)을 갖춘 스승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존경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럽고, 쉽게 행복과 평화와 평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메따의 느낌이 커지면 마음은 잘 집중됩니다.

먼저 존경하는 사람을 5-6명 선택해서 메따를 보냅니다. 이렇게 해서 메따가 생기면, 두 번째 집단에게 메따를 보냅니다. 두 번 째 집단은 사랑하는 사람들, 즉 가족, 친척, 친구를 대상으로 합니다.  다음 세 번째 집단은 중립적인 사람들입니다. 네 번째는 미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섯 번째는 원수나 적입니다. 앞의 네 집단을 향해 자관 수행을 해서 메따가 향상되면 자신의 원수나 적에게도 메따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번 집중수행 기간동안 자관 수행을 하는 중요한 이유는 자관 수행을 통해 집중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체계적으로 자관 수행을 해보면, 메따의 느낌을 일으키는데 가장 적절한 대상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만일 한정된 대상을 향한 자관 수행을 하는데 메따의 느낌이 잘 일어나지 않으면, 그 대상의 좋은 면, 장점을 1-2분 정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이 행복하고 잘되기를 바란 후에 자관의 문구를 반복합니다. 예를 들면, ‘스승께서 안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어머님이 안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아버님이 안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자관의 문구를 마음으로 반복합니다. 5분 정도 자관을 해도 사랑의 느낌이 일어나지 않으면, 대상을 바꿉니다.

여러분은 지금 설명 드린 자관 수행법에 대해서 강하고 확고한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강한 믿음은  정진의 바탕이 됩니다.

여러분이 자관 수행을 열심히 해서 모든 괴로움이 소멸한 열반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2. 자관 수행에 근거한 위빠사나 수행법

이번 집중수행 동안에 여러분은 자관 수행에 바탕을 둔 위빠사나 수행을 할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동안에 좌선할 때, 처음 15분에서 20분간은 자관 수행을 하십시오. 이 때는 대상을 정해놓고 하는 자관을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택한 대상에 대해서 5분 정도 자관을 했는데도 마음에 메따의 감정이 잘 생기지 않는 경우에는 1-2분 정도 자관 수행의 대상이 지니고 있는 좋은 점, 장점을 생각한 후에 그 대상의 행복과 평화를 생각하고 나서 다시 자관 문구를 외우면서 자관 수행을 하십시오. 만일 어느 대상에 대해 메따의 감정이 잘 생겨서 지속되면 30분을 계속해서 한 대상을 향해 자관 수행을 하십시오. 한 대상에 대해 5분 정도 수행해도 메따가 잘 생기지 않으면, 대상을 바꾸십시오. 한 시간의 좌선에서 4-5명의 대상을 바꾸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한 대상에 대해서 메따가 잘 일어나면 대상을 바꾸지 말고 30분 또는 1시간 동안 지속해서 그 대상을 향해서 메따를 보내십시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을 하기 전에 행하는 자관 수행입니다.


수행자들은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의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사마타란, 마음집중, 평온, 고요함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수행의 대상에 깊게 집중되었을 때, 마음은 평온해지고 고요해집니다. 사마타 수행의 목적은, 하나의 대상에 깊은 마음의 집중을 얻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사마타 수행의 결과는 안지정(安止定; appanā-samādhi, jhāna) 또는 근접정(近接定; upacārā-samādhi)과 같은 깊은 마음집중(삼매 또는 定)을 얻는 것입니다. 마음이 수행의 대상에 깊게 집중되어 있을 때, 욕정, 탐욕, 분노, 욕망, 자만, 무지 등과 같은 모든 번뇌들은, 대상에 몰입해 있는 마음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마음이 모든 번뇌나 덮개에서 벗어나게 될 때, 우리는 평온함, 고요함, 행복, 평화로움을 느낍니다. 따라서 사마타 수행의 결과는, 안지정(安止定) 또는 근접정(近接定)과 같은 깊은 마음집중(삼매 또는 定)을 얻음을 통한 어느 정도의 행복감입니다. 하지만 사마타 수행으로는 우리의 마음과 몸의 진정한 본질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오직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만 몸과 마음의 현상의 무상하고, 고이며, 무아인 진정한 본질을 깨달을 수 있고, 번뇌를 뿌리뽑을 수 있습니다. 원인인 번뇌가 없어지면 결과인 괴로움이 없어집니다. 위빠사나 수행으로 마음의 번뇌를 없애면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의 차이를 알면,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위빠사나의 의미

위빠사나(Vipassanā)는 두 말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복합어입니다. 여기에서 접두사 ‘위(vi)’라는 말은, 마음과 몸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 불만족 또는 괴로움, 무영혼, 무아 또는 에고가 없음을 말합니다. ‘빠사나(passanā)’라는 말은, 바른 이해 또는 깨달음(realization)을 의미합니다. 마음(名; nāma)과 몸(色; rūpa)의 세 가지 특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뜻합니다. 위빠사나 수행 또는 마음챙김 수행을 할 때, 그 목적은 현상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 고, 무아를 깨닫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깊은 마음집중(samādhi)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즉 마음집중이 있어야 지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음집중은 지속적이며 세심한 마음챙김(sati)이 있어야 합니다. 지속적인 마음챙김을 지니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노력 즉 정진(viriya)이 있어야 합니다. 정진을 하기 위해서는 불법승 삼보와 수행법에 대한 강하고 확고한 믿음(saddha)이 있어야합니다. 이처럼 믿음을 바탕으로 노력이 있고, 노력을 바탕으로 마음챙김이 있으며, 마음챙김을 바탕으로 마음집중이 있고, 마음집중이 있을 때, 위빠사나 지혜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덕목이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인 오근(五根)입니다. 이 다섯 가지 마음의 기능을 수행자들은 예리하게 지니고 강하게 길러야 합니다.

위빠사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세심하게 알아차려야(attentively aware)합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몸과 마음의 현상을 마음챙겨서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것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여러분의 몸에서 뜨거움이 생기면 바로 그 뜨거움을 “뜨거움”, “뜨거움”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통증이 생기면 “아픔”, “아픔” 하고 알아차립니다. 수행을 하다가 행복을 느끼면, “행복”, “행복” 하고 알아차립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 “생각” 하고 알아차립니다. 몸과 마음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그 현상을 마음으로 명칭을 붙이면서 알아차립니다. 이 명칭은 위빠사나 자체는 아니지만, 대상이 있고나서 그 대상에서 생겨난 개념(tajja paññati)입니다. 명칭을 사용하면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데 도움이 됩니다. 즉, 대상에 대한 세심하고 정확한 마음챙김을 지니는데 도움이 됩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사마타 수행의 한 방법으로 땅 카시나(地遍, pathavi kasina)2)를 만들어 놓고 수행을 할 때, “땅”, “땅” 하고 마음속으로 반복하면서 그 땅 색의 원판을 계속 관찰합니다. 이처럼 사마타 수행이나 위빠사나 수행을 처음 할 때는 집중이나 관찰의 대상을 명칭을 사용합니다. 명칭을 붙이지 않고도 마음챙김이 충분히 지속적으로 이어질 정도로 수행이 향상되면 명칭은 자연스럽게 붙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마음챙김은 지금 이 순간에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대상에 대해 생각하거나, 분석하거나, 비판하거나, 개념화해서는 안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는, 생각, 분석, 비판, 개념화를 위한 공간이 없습니다.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일어나는 순간에 바로 알아차리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생겨난 것을 생겨날 때 바로 본다.(bhūtam bhūtato passati)는 부처님의 말씀은 바로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입니다. 이처럼 위빠사나 수행은 실제로 대상이 생기는 순간에 관찰하는 것입니다. 대상을 일부러 만들어서 마음에 가져오는 것은 사마타 수행이지 위빠사나 수행이 아닙니다. 만일 생각이 일어난다면, 생각을 바로 알아차리고 그 진행과정을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알아차린 후, 다시 일차적인 관찰의 대상으로 돌아가서 마음챙김을 지속합니다.


위빠사나의 원칙

위빠사나의 원칙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위빠사나의 원칙이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그 무엇이던지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마음챙겨서(be mindful) 알아차리고(be aware) 관찰하는(observe)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마음챙김 수행이라고도 합니다. 마음챙김을 지닐 때 위빠사나 지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위빠사나 지혜는 물질적/육체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이해입니다. 위빠사나는 팔리어입니다. 서양의 학자들은 ‘통찰’ insight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빠사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실제로 수행하는 수행자들입니다.

 이곳에서 가르치고 있는 위빠사나 수행에는 세 가지 양상이 있습니다. 좌선과 행선(걷기 수행) 그리고 일상동작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먼저 좌선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좌선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 몸과 마음에서 무엇을 관찰해야 할지 잘 모르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버마의 마하시 큰스님께서 좌선할 때에는 호흡에 따라 생기는 현상인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라고 하셨습니다.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움직임은 바람의 요소(風界, vāyo-dhātu)의 개별적 특성입니다.

모든 현상에는 개별적 특성과 일반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지수화풍의 네 가지 물질적 요소의 개별적 특성과 일반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네 가지 요소는 땅의 요소[地界; pathavi-dhātu], 물의 요소[水界; apo-dhātu], 불의 요소[火界; tejo-dhātu], 바람의 요소[風界; vāyo-dhātu]를 말합니다.

땅의 요소란, 딱딱함(hardness), 부드러움(softness) 등과 같은 그것의 개별적인 특성입니다. 물의 요소(水界)의 개별적인 특성은 유동성과 응집성입니다. 불의 요소(火界)는 실제적인 불(火)이 아니라, 그 요소의 독특한 특성을 말합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불의 요소의 독특한 특성입니다. 바람의 요소(風界)도 마찬가지로 바람(風)이 아니라, 바람의 요소의 독특한 특성에 주어진 명칭입니다. 그 특성이란, 여러분 몸의 어느 부분에서의 움직임, 동작, 떨림 또는 지탱해주는 힘(support)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 몸의 어느 부분에서 움직임, 동작, 떨림 또는 지탱해주는 성질을 느끼고, 자각하고, 바르게 이해할 때, 그것은 여러분들이 바람의 요소를 자각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들의 마음이 잘 집중되어 있다면, 몸과 마음의 개별적인 특성을 먼저 이해하게 되고 나중에 일반적인 특성, 공통적인 세 가지 특성인 무상(無常; anicca), 고(苦; dukkha), 무영혼 또는 무아(無我; anatta)를 깨닫습니다.

여러분이 배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움직임을 관찰할 때, 바람의 요소의 개별적인 특성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즉 바람의 요소의 개별적 특성인 움직임, 동작, 떨림 또는 지탱해주는 힘(support)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 때는 반듯이 배의 움직임을 관찰해야지 코끝을 관찰해서는 안됩니다. 이 수행법은 입출식념(入出息念, ānāpāna-sati)이 아닙니다. 따라서 코끝이나 호흡의 과정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이 수행법을 <<대념처경>>에서는 요소에 대한 관찰(dhātu-manasikara)이라고 했습니다.

좌선할 때,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데, 배가 불러오는 움직임을 ‘일어남’하고 알아차리고, 꺼지는 움직임을 ‘사라짐’하고 알아차립니다. 즉 ‘일어남’,  ‘사라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배의 움직임을 알아차려줍니다. 명칭 자체는 위빠사나 수행이 아닙니다. 하지만 명칭은 대상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는데 도움이 됩니다. 위빠사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일인데 이 알아차림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명칭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좌선할 때, 배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움직임이 관찰의 유일한 대상이 아니라 일차적인 대상입니다. 만일 가려움이 생겨서 두드러지면, 그 가려움을 관찰합니다. 관찰해서 없어지면 다시 일차적인 대상을 관찰합니다. 소리가 들리면, ‘들림’, ‘들림’ 하고 알아차립니다. 냄새가 나면 ‘냄새’, ‘냄새’ 하고 알아차립니다. 졸음이 오면 반드시 졸음을 ‘졸림’, ‘졸림’ 하고 알아차립니다. 졸음은 수행자의 아주 가까운 친구입니다. 졸음이 찾아오면 알아차리고, 없어지면 다시 배의 움직임으로 돌아갑니다.

배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다가 마음에 행복한 느낌이 생기면, ‘행복’, ‘행복’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행복한 느낌이 사라지면 다시 배의 움직임으로 돌아갑니다.

통증은 인내심을 가지고 관찰해야 합니다. 통증이 심해진다고 몸을 움직이거나 자세를 바꾸면 안 됩니다. 단지 자관 수행을 할 때는 자세를 바꾸어도 좋습니다. 자관 수행을 하는 동안 통증이 일어나면 마음에서 메따의 느낌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통증이 일어난다고 자세를 바꾸면 나쁜 버릇이 됩니다. 나쁘다는 말은 수행에 나쁘다는 말입니다. 통증 때문에 자세를 바꾸면 조금만 불편함을 느껴도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바꾸게 되고 집중이 깨지고 맙니다. 따라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통증을 참아야 합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면 앉는 자세를 바꾸는 대신에 일어나서 걷기 수행을 하십시오.

20년 전에 한 무리의 수행자들을 지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들은 좌선할 때 15분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거나 다리의 자세를 바꾸곤 했습니다. 1시간 동안 4-5번 자세를 바꾼 셈입니다. 이런 상황을 전해 듣고 이 수행자들을 앞에 앉혀 놓고 좌선을 시켰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한 수행자가 몸을 움직였고 그 수행자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들은 1시간 15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좌선을 해냈고, 이후 이들 모두는 1시간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좌선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인내는 가장 수행자들이 지녀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통증을 견딜 수 없을 때는 좌선을 지속하지 말고 걷기 수행을 하십시오. 한 번의 좌선시간에 손을 놓은 위치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행선(걷기 수행)

행선을 할 때, 먼저 서 있는 자세를 ‘서있음’, ‘서있음’ 하고 3-4번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조금 느린 걸음으로 걸으면서  ‘왼발’, ‘오른발’ 하고 각 걸음을 알아차립니다. 시선은 자기 키 정도 앞(180cm내외)을 내려다봅니다. 걸을 때 눈을 감으면 안 됩니다. 나무 멀리 내다보아도, 너무 가까운 곳을 내려보아도 안 됩니다. 고개를 바르게 펴고 시선을 앞으로 내리면 됩니다.

걷기 수행할 때 주의할 점 네 가지가 있습니다. 시선을 180cm정도 내려다 볼 것,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지 말 것, 발을 내려놓을 때 발바닥 전체를 가지런히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것, 발의 동작에만 마음챙기는 것입니다. 무릎이나 다리(종아리) 또는 허벅지는 관찰하지 않습니다. 

걷기 수행은 일정한 거리를 왕복하며, 1시간 정도 걷습니다. 처음에  ‘왼 발’, ‘오른 발’ 하고 각 걸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10분 정도 합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듦’ ‘나아감’ ‘놓음’하고 한 걸음을 3 단계로 나누어 관찰합니다. 3 단계 수행은 점차 4단계(‘놓음’ 다음에 ‘닿음’을 추가), 5 단계(‘닿음’ 다음에 ‘누름’을 추가)로 자세하게 알아차립니다. 걷기 전에 먼저 걸으려고 하는 의도를 먼저 ‘의도’ ‘의도’ 하고 알아차린 후 다리를 들기 시작합니다.

방향을 돌릴 때, 서 있는 자세를 ‘서있음’ 하고 4-5번 알아차리고, 돌려고 하는 의도를 ‘의도’ ‘의도’ 하고 알아차린 후, ‘돎’ ‘돎’ 하면서 도는 동작을 알아차립니다. 이처럼 걷기 수행을 좌선하기 전에 1 시간 합니다. 최소한 45분은 해야 합니다. 


일상 동작

일상 동작이란, 좌선과 행선을 제외한 모든 동작입니다. 즉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깨어있는 동안 하는 모든 일상생활의 동작을 말합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옷을 입을 때, 세면할 때, 샤워할 때, 양치할 때, 이동할 때, 밥먹을 때, 화장실 갈 때, 잠자리에 들 때 모든 행동, 동작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일상 동작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수행자는 달팽이처럼 천천히 움직여야 합니다. 모든 동작에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 의도를 ‘의도’ 라고 알아차리고 각 동작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간단한 명칭을 붙여가면서 알아차립니다.

부처님의 시자였던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 수타원이었는데, 일상 동작에 대한 분명한 앎을 통해서 아라한의 깨달음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이 향상을 이루기 위해 수행자가 열심히 마음챙겨 알아차리고 관찰해야 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도중에도 이 생각들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그 생각을 세심하고 정확하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수행은 향상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일상 동작을 자세하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일상 동작에 대한 알아차림이 없다면 위빠사나 수행에서 향상은 없습니다. 천천히 세심하게 자신의 일상 동작을 하나하나 의도에서부터 전 과정을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세 번째는 좌선이고 네 번째가 행선입니다.

집중수행을 하는 동안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말을 하지 않고 고귀한 침묵을 지키는 것과 천천히 움직이는 것입니다. 5분 동안 말을 하면, 3일간의 마음집중이 깨지고 맙니다. 여러분이 지금 설명한 수행법을 바르게 이해해서 열심히 정진하여 괴로움이 소멸한 열반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사두 ! 사두 ! 사두 !


1) 여기 정리하는 법문은 2003년 5월 20에서 6월 8일까지 천안 위빠사나 수행처 호두마을에서 50명의 수행자를 대상으로 해주신 수행법이다. 특히 이번 집중수행에서 우 자나카 사야도께서는 자관에 근거한 위빠사나를 지도해 주셨고,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많은 이익을 얻었다. 여기 정리된 법문은 처음 3일간 해주신 법문으로 자관수행법과 자관에 근거한 위빠사나 수행법이 자세히 제시되어있다. 

역주 2) 카시나(kasina)라는 말은 ‘전체’, ‘전부’, ‘모든’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의 kṛṭṣna와 연관된 용어라는 설이 있으며, 한문으로는 편(遍)이라고 번역됩니다. 사마타 수행의 대상으로 삼은 ‘카시나’를 의식에 가득하게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즉, 청색의 카시나를 대상으로 삼을 경우, 청색이 칠해진 둥근 원판을 만들어 놓고, 처음에는 이 원판을 보면서 의식을 집중시키면서, 눈을 감아도 의식 내에 청색의 원판이 떠오르도록 합니다. 이렇게 청색으로 의식을 가득 채워 가며 마음을 집중시켜나가 초선에서 사선에 이르기까지 수행을 해나갑니다.
[이 게시물은 마을지기님에 의해 2006-10-26 17:13:15 수행에 도움이 되는 글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