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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마음 챙김’에 대한 붓다의 말씀
  글쓴이 : 마을지기     날짜 : 06-12-10 10:58     조회 : 7033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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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마음 챙김’에 대한 붓다의 말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붓다(Buddha)께서 쿠루족의 마을인 깜마삿담마에 머무셨다. 거기에서 붓다께서는 비구들을 “오, 비구(bhikhu)들이여!” 라고 부르셨다. 그러자 비구들은 “부처님이시여!”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중생의 마음의 정화를 위한, 슬픔과 설움을 넘어서기 위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의 소멸을 위한, 성스러운 진리를 알기 위한, 그리고 열반을 실현시키는 오직 한 길은 네 가지 대상을 완전하게 챙기는 것이니라. 여기에서 네 가지란 무엇인가? 그대는 몸들에서 몸을 몸으로, 느낌들에서 느낌을 느낌으로, 마음들에서 마음을 마음으로, 법들에서 법을 법으로 관찰하며 지낸다. 이렇게 온힘을 기울여서 쉬지 않고 대상을 챙기다 보면 그 본성이 드러나서 그걸 분명히 알게 되는 순간, 세상(오온)에 대한 탐심(貪心)과 진심(嗔心)을 제어하여 놓아버리게 되니라.


몸을 있는 그대로 보기



호흡 관찰(呼吸觀 ānāpānasati)



그러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몸들에서 몸을 몸으로 관찰하며 지낼까?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승은 숲속 나무 아래 한적한 곳에 가서 결가부좌로 상체를 똑바로 세운 후, 깨어 있는 마음으로 호흡에 밀착하여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을 알아차린다. 마치 숙련된 도공이 물레를 천천히 돌리면서 ‘천천히 도네’라고 알아차리고 빨리 돌리면서 ‘빨리 도네’라고 알아차리듯이, 그대는




들숨이 길면 ‘들숨이 길다’라고 알아차리고,

날숨이 길면 ‘날숨이 길다’라고 알아차린다.

들숨이 짧으면 ‘들숨이 짧다’라고 알아차리고,

날숨이 짧으면 ‘날숨이 짧다’라고 알아차린다.

온몸의 느낌을 체험하며 숨을 들이쉬고

온몸의 느낌을 체험하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성성하면, 몸의 형성 작용(身行)이 고요해지는 걸 알며 숨을 들이쉬고

몸의 형성 작용이 고요해지는 걸 알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희열이 충만하면, 그걸 몸소 느끼며 숨을 들이쉬고,

그걸 몸소 느끼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행복감이 충만하면, 그걸 몸소 느끼며 숨을 들이쉬고,

그걸 몸소 느끼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마음의 형성 작용(心行)을 느낌으로 알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의 형성 작용을 느낌으로 알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성성하면, 심행(心行)이 고요해지는 걸 느낌으로 알며 숨을 들이쉬고

심행이 고요해지는 걸 느낌으로 알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이렇게 심리 상태를 일일이 알며 숨을 들이쉬고,

심리 상태를 일일이 알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법열(法悅)을 느낌으로 알며 숨을 들이쉬고,

법열을 느낌으로 알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마음의 고요를 느낌으로 알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의 고요를 느낌으로 알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마음의 해탈을 느낌으로 알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의 해탈을 느낌으로 알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무상(無常)을 있는 그대로 보며 숨을 들이쉬고,

무상을 있는 그대로 보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탐심이 사라지는 걸 있는 그대로 보며 숨을 들이쉬고,

탐심이 사라지는 걸 있는 그대로 보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다 스러지는 걸 있는 그대로 보며 숨을 들이쉬고,

다 스러지는 걸 있는 그대로 보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완전히 벗어났음을 비추어보며 숨을 들이쉬고,

완전히 벗어났음을 비추어보며 숨을 내쉰다. 이때도 수행에 전념한다.


이와 같이 그대가 안으로 밖으로, 또는 안팎으로 호흡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면, 집중이 깊어질수록 몸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고 사라지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며, 생멸하는 현상과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그대는 호흡을 챙길수록 몸은 단지 순수한 앎과 마음 챙김을 키우기 위한 매체일 뿐 그 속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지혜가 차오름에 따라 갈애와 사견이 사라져서, 이 세상 어느 것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지낸다.


몸의 움직임에 대한 분명한 앎


그러면서 비구들이여, 비구가 걷고 있을 때는 ‘걷고 있음’을, 서 있을 때는 ‘서 있음’을,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음’을, 누워 있을 때는 ‘누워 있음’을 분명히 안다. 또한 앞으로 나가거나 뒤돌아올 때 분명히 알고 앞을 보거나 뒤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며, 팔다리를 구부리거나 펼 때도 분명히 알고 가사를 입거나 바루를 챙길 때도 분명히 안다. 먹거나 마실 때와 그걸 맛보고 소화시킬 때도 분명히 알고,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안다. 그리고 잠들고 깨어나는 순간과 말하거나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안다.

이와 같이 그대가 안으로 밖으로, 또는 안팎으로 몸의 움직임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면, 집중이 깊어질수록 몸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고 사라지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며, 생멸하는 현상과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그대는 몸의 움직임을 챙길수록 몸은 단지 순수한 앎과 마음 챙김을 키우기 위한 매체일 뿐 그 속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지혜가 차오름에 따라 갈애와 사견이 사라져서, 이 세상 어느 것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지낸다.


몸의 더러움 관찰(不淨觀)


또 그대의 몸은 머리끝에서 발바닥까지 갖가지 불순물이 꽉 차서 피부로 에워싸여 있음을 샅샅이 관찰하여, ‘이 몸에 머리카락, 털, 손발톱, 치아,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 폐, 비장, 대장, 소장, 늑막, 위, 뇌수, 배설물,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임파액, 침, 콧물, 관절액, 오줌 등이 있다’라고 낱낱이 안다. 그것은 마치 양쪽 끝에 구멍이 뚫린 자루 속에 보리, 쌀, 녹두, 콩, 참깨, 기장 등 갖가지 곡식이 가득 들어 있는 걸 눈 밝은 이가 열어보고는 ‘이건 보리, 이건 쌀, 이건 녹두, 이건 콩, 이건 참깨, 이건 기장’이라고 살피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대가 안으로 밖으로, 또는 안팎으로 몸의 더러움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면, 집중이 깊어질수록 몸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고 사라지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며, 생멸하는 현상과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그대는 몸의 더러움을 챙길수록 몸은 단지 순수한 앎과 마음 챙김을 키우기 위한 매체일 뿐 그 속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지혜가 차오름에 따라 갈애와 사견이 사라져서, 이 세상 어느 것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지낸다.


사대 요소 관찰


또한 그대는 이 몸이 어떤 자세로 있든 4대(四大: 세상의 네 가지 근본 성분)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관찰해서,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안다. 마치 능숙한 백정이나 그의 제자가 소를 도살하여 부위별로 나누어놓고는 큰 길 네거리에서 소는 간 데 없이 오직 고깃덩어리만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대는 이 몸도 어떤 자세로 있든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관찰해서 안다.

이와 같이 그대가 안으로 밖으로, 또는 안팎으로 4대 요소를 보이는 대로 관찰하면, 집중이 깊어질수록 몸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고 사라지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며, 생멸하는 현상과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그대는 4대 요소를 챙길수록 몸은 단지 순수한 앎과 마음 챙김을 키우기 위한 매체일 뿐 그 속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지혜가 차오름에 따라 갈애와 사견이 사라져서, 이 세상 어느 것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지낸다.


몸의 속성 관찰(屍體觀)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하루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면서 퉁퉁 부풀어오르고 푸르죽죽해지며 짓무르는 걸 보고서 그대의 몸을 비추어보아, ‘진실로 이 몸 역시 그와 같이 되어서 그런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안다.

수행승은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 매, 독수리, 승냥이, 들개, 표범, 호랑이, 자칼이나 갖가지 벌레들이 뜯어 파먹는 걸 보고서 그대의 몸을 비추어보아, ‘진실로 이 몸 역시 그와 같이 되어서 그런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안다.

그대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에서 피와 살점이 달라붙은 채 힘줄로 연결된 해골, 피는 묻어 있지만 살점은 붙어 있지 않고 힘줄로 연결된 해골, 피도 살점도 없이 힘줄로 연결된 해골, 그 뼈들의 연결이 풀려서 손뼈, 발뼈,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골반뼈, 등뼈, 갈비뼈, 팔뼈, 어깨뼈, 목뼈, 턱뼈, 이빨, 두개골 등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걸 보고서 그대의 몸을 비추어보아, ‘진실로 이 몸 역시 그와 같이 되어서 그런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안다.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조개껍질처럼 백골로 변해 있음을 보고서, 온갖 풍상으로 뼈 무더기만 남아서 흩어져 있음을 보고서, 그리고 뼈마저 삭아 부서져 흙가루가 되어 있음을 보고서 그대의 몸을 비추어보아, ‘진실로 이 몸 역시 그와 같이 되어서 그런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대가 안으로 밖으로, 또는 안팎으로 몸의 속성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면, 집중이 깊어질수록 몸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고 사라지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며, 생멸하는 현상과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그대는 몸의 속성을 챙길수록 몸은 단지 순수한 앎과 마음 챙김을 키우기 위한 매체일 뿐 그 속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지혜가 차오름에 따라 갈애와 사견이 사라져서, 이 세상 어느 것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지낸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보기


동시에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느낌들에서 느낌을 느낌으로 관찰하며 지낼까?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승은 즐거울 때 ‘즐거운 느낌’을, 괴로울 때 ‘괴로운 느낌’을,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을 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체험으로 안다. 그는 세간에서 즐거울 때는 ‘세간에서 즐거운 느낌’을, 출세간에서 즐거울 때는 ‘출세간에서 즐거운 느낌’을 체험으로 안다. 또 세간에서 괴로울 때는 ‘세간에서 괴로운 느낌’을, 출세간에서 괴로울 때는 ‘출세간에서 괴로운 느낌’을 체험으로 안다. 또한 세간에서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을 때는 ‘세간에서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출세간에서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을 때는 ‘출세간에서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체험으로 안다.

이와 같이 그대가 안으로 밖으로, 또는 안팎으로 느낌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면, 집중이 깊어질수록 느낌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고 사라지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며, 생멸하는 현상과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그대는 느낌을 챙길수록 느낌은 단지 순수한 앎과 마음 챙김을 키우기 위한 매체일 뿐 그 속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지혜가 차오름에 따라 갈애와 사견이 사라져서, 이 세상 어느 것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지낸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기


그 순간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마음들에서 마음을 마음으로 관찰하며 지낼까?

그대는 탐심이 있으면 ‘탐심(貪心)이 있음’을, 탐심이 없으면 ‘탐심이 없음’을 알고, 진심(嗔心)이 있으면 ‘진심이 있음’을, 진심이 없으면 ‘진심이 없음’을 느낌으로 안다. 치심(癡心)이 있으면 ‘치심이 있음’을, 치심이 없으면 ‘치심이 없음’을 느낌으로 알고. 그는 마음이 위축되면 ‘마음이 위축됨’을, 마음이 산란하면 ‘마음이 산란함’을 느낌으로 안다. 또 마음이 수행으로 정화되면 ‘마음이 수행으로 정화됨’을, 마음이 수행으로 정화되지 않으면 ‘마음이 수행으로 정화되지 않음’을 느낌으로 안다. 완전히 닦여서 더 이상 위없는 마음(無上心)이면 ‘위없는 마음’임을, 덜 닦여서 아직 위없는 마음이 아니면 ‘위없는 마음이 아님’을 느낌으로 안다. 마음이 삼매에 들면 ‘마음이 삼매에 듦’을, 마음이 삼매에 들지 않으면 ‘마음이 삼매에 들지 않음’을 알고, 마음이 해탈되면 ‘마음이 해탈됨’을, 마음이 해탈되지 않으면 ‘마음이 해탈되지 않음’을 느낌으로 안다.

이와 같이 그대가 안으로 밖으로, 또는 안팎으로 마음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면, 집중이 깊어질수록 마음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고 사라지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며, 생멸하는 현상과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그대는 마음을 챙길수록 마음은 단지 순수한 앎과 마음 챙김을 키우기 위한 매체일 뿐 그 속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지혜가 차오름에 따라 갈애와 사견이 사라져서, 이 세상 어느 것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지낸다.


법을 있는 그대로 보기


그리고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법들에서 법을 법으로 관찰하며 지낼까?


오장애(五蓋 nīvarana) 관찰


그대는 비구는 법들에서 다섯 가지 장애 현상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며 지낸다.

감각적 욕망(kāmacchanda)이 그대에게 있으면 ‘감각적 욕망 있음’을, 감각적 욕망이 없으면 ‘감각적 욕망 없음’을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이 사라지면 어떻게 사라지는지, 그리고 사라진 감각적 욕망이 이후로 일어나지 않으면 왜 일어나지 않는지를 안다.

악의(vyāpāda)가 그대에게 있으면 ‘악의 있음’을, 악의가 없으면 ‘악의 없음’을 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의가 일어나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미 일어난 악의가 사라지면 어떻게 사라지는지, 그리고 사라진 악의가 이후로 일어나지 않으면 왜 일어나지 않는지를 안다.

나태와 졸음(thina-middha)이 그대에게 있으면 ‘나태와 졸음 있음’을, 나태와 졸음이 없으면 ‘나태와 졸음 없음’을 안다. 그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태와 졸음이 일어나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미 일어난 나태와 졸음이 사라지면 어떻게 사라지는지, 그리고 사라진 나태와 졸음이 이후로 일어나지 않으면 왜 일어나지 않는지를 안다.

들뜸(uddhacca)과 회한(kukkucca)이 그대에게 있으면 ‘들뜸과 회한 있음’을, 들뜸과 회한이 없으면 ‘들뜸과 회한 없음’을 안다. 그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들뜸과 회한이 일어나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미 일어난 들뜸과 회한이 사라지면 어떻게 사라지는지, 그리고 사라진 들뜸과 회한이 이후로 일어나지 않으면 왜 일어나지 않는지를 안다.

의혹(viccikicchā)이 그대에게 있으면 ‘의혹 있음’을, 의혹이 없으면 ‘의혹 없음’을 안다. 그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의혹이 일어나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미 일어난 의혹이 사라지면 어떻게 사라지는지, 그리고 사라진 의혹이 이후로 일어나지 않으면 왜 일어나지 않는지를 안다.

이와 같이 그대가 안으로 밖으로, 또는 안팎으로 오장애 현상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면, 집중이 깊어질수록 법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고 사라지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며, 생멸하는 현상과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그대는 오장애 현상을 챙길수록 법은 단지 순수한 앎과 마음 챙김을 키우기 위한 매체일 뿐 그 속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지혜가 차오름에 따라 갈애와 사견이 사라져서, 이 세상 어느 것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지낸다.


오온(五蘊 pañcakkhandha) 관찰


늘 그대는 ‘나’로 착각해서 집착하는 다섯 가지 몸과 마음의 집합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며 지낸다.

그대는 이건 물질적 현상(色 rūpa)이고, 그건 이리 일어나서 저리 사라진다는 걸 안다. 이건 느낌(受 vedanā)이고, 그건 이리 일어나서 저리 사라진다는 걸 안다. 또 이건 인식(想 saññā)이고, 그건 이리 일어나서 저리 사라진다는 걸 안다. 또한 이건 형성 작용(行 saṅkhārā)이고, 그건 이리 일어나서 저리 사라진다는 걸 안다. 그리고 이건 의식(識 viññāna)이고, 그건 이리 일어나서 저리 사라진다는 걸 안다.

 이와 같이 그대가 안으로 밖으로, 또는 안팎으로 오온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면, 집중이 깊어질수록 법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고 사라지는 현상과 그 원인을 알게 되며, 생멸하는 현상과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그대는 오온을 챙길수록 법은 단지 순수한 앎과 마음 챙김을 키우기 위한 매체일 뿐 그 속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지혜가 차오름에 따라 갈애와 사견이 사라져서, 이 세상 어느 것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지낸다.


여섯 감각의 장(六門)의 안팎 관찰


항상 그대는 여섯 감각의 장(場)의 안팎에서 현상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며 지낸다. 그러면 어떻게 감각 영역과 그 대상을 챙기며 지낼까?

비구는 눈(眼)과 보이는 형상(色)을 알고, 둘이 만나서 일어나는 결박의 번뇌(十結 saṁyojana)를 안다. 또한 귀(耳)와 소리(聲), 코(鼻)와 냄새(香), 혀(舌)와 맛(味), 몸(身)과 촉감(觸), 마음(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