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위빠사나란? > 위빠사나 수행지침서
 
 
  마하시 수행법과 대념처경
  글쓴이 : 마을지기     날짜 : 06-12-16 10:28     조회 : 11223     추천 : 0    
  트랙백 주소 : http://www.vmcwv.org/bbs/tb.php/menu2_1/26
 

마하시 수행법과 대념처경

Mahāsi Vipassanā Meditation and Mahāsatipaṭṭhāna-sutta



김 재성(Jaesung Kim)*



목차


1. 들어가는 말

2. 마하시 사야도의 생애

2.1. 교학적 배경

2.2. 위빠사나 수행

2.3. 마하시 사야도의 활동

3.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

3.1. 마하시 수행법에서 󰡔대념처경󰡕의 위상

3.2. 마하시 수행법과 󰡔청정도론󰡕

4. 맺는 말














*            

서울대학 철학과(1986) 및 대학원 석사과정(1988)을 졸업하고, 1991년 10월 일본 동경대학에 유학하여 초기불교 및 상좌불교, 부파불교의 아비달마 등을 연구하였다. 2000년3월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청정도론의 수행론󰡕으로 학위논문을 정리하고 있다. 1991년 여름 미얀마의 빤디따라마에서 하안거를 지낸 이후 위빠사나 수행을 해오고 있다. 초기불교 및 상좌불교 수행에 대한 다수의 이론적인 연구가 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으며, 사단법인 위빠사나 수행처 호두마을의 지도법사로 위빠사나를 지도하고 있다. 법명은 정원.


1. 들어가는 말


아함경이나 팔리 니카야 등과 같은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그 법문에 따라 수행을 한 제자들이 수타원에서 아라한에 이르는 성인(聖人)이 되었다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이렇게 깨달음의 방법을 제시해 놓은 법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현명한 이들에 의해서 스스로 이해되고 체험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본고에서 다루는 󰡔대념처경󰡕도 7년에서 7일 동안 이 경전에 쓰인 수행을 한다면, 아라한의 지혜나 아나함[不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보증한 깨달음을 현대의 우리들이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있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 것일까?

현대 미얀마의 대선지식 일명 마하시 사야도 Mahāsī Sayādaw(1904-1982)로 더 잘 알려진, 우 소바나 마하테라 U Sobhana Mahāthera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념처경󰡕을 주석문헌과 복주(復註)까지 자세히 이론적으로 검토한 후에, 실제적인 수행을 지도받을 스승을 찾았다. 당시 사띠팟타나 수행으로 유명한 밍군 제타완 사야도 Mingun Jetawun Sayādaw로 알려진 우 나라다 U Nārada 스님(1868-1955)을 찾아가, 4개월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집중수행을 하였다고 한다. 이 수행의 결과, 마하시 사야도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다른 수행자들을 지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마하시 사야도는 1938년부터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였고, 1949년 현재의 마하시 수행센터의 원장이 된 이후 1982년 입적할 때까지 미얀마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수행자들을 지도하였다. 

본고에서는 마하시 스님의 생애를 교학과 수행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의 특징과 마하시 수행법에서 󰡔대념처경󰡕과 󰡔청정도론󰡕이 차지하는 위치를 살펴보면서 마하시 사야도의 저술을 통해, 마하시 수행법에 대한 문헌에 근거한 이론적인 이해를 시도하려고 한다.


미얀마의 위빠사나 수행

19세기 후반까지 미얀마 상좌불교의 전통에서 수행이란 일부의 수행승들에게 국한된 일이었다. 하지만, 숲 속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수행승에게 제한되어 있었던 위빠사나 수행 전통은 민돈 Mindon 왕(1814-1878, 재위 1853-1878)에 의해 왕궁에서 실천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1910년대를 지나면서 전문적인 수행센터가 설립되고,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에게까지 위빠사나 수행이 널리 실천되기 시작했다.1) 일반 승려는 물론 재가자들에게까지 위빠사나 수행의 보급된 것은 미얀마의 초대 수상 우 누의 역할이 컸다. 그의 주도하에 1940년대에서 50년대에 걸쳐 위빠사나 보급이 추진되었다.

미얀마의 수행 전통과 정치의 관계에 관한 연구를 보면2), 19세기의 만달레이 왕국의 민돈 왕과 미얀마 독립 후의 초대 수상이었던 우 누(U Nu) 수상(1907~1995)이라는 두 사람의 정치지도자와 수행 운동의 관계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우 누 수상은 우 트윈에 의해 설립된 Buddha Sāsana Nuggaha Organization의 창설 멤버이며, 특히 마하시 사야도를 초빙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얀마에서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이 널리 보급되는 데에는 정부의 지원도 있었지만 반드시 정치적인 배경만으로 마하시 수행 센터가 급속도로 확산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곡 사야도(Mogok Sayadaw) 센터3)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제자들의 힘에 의해서도 수행의 전통은 널리 보급되기 때문이다. 마하시 사야도의 교학과 수행의 덕이 마하시 수행법의 확산에 결정적인 요인임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현재, 적어도 24 가지 이상의 유명한 위빠사나 수행법이 수많은 수행지도자에 의해서 수백 곳의 수행센터와 사원에서 지도되고 있다,4)

위빠사나 수행이 역사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데는 세 가지 중요한 점이 있었다.

첫 번째로 과거에는 전문적인 소수의 수행승들이 숲 속의 수행처에서 수행을 했는데 비해, 현대의 위빠사나는 많은 수행자들이 잘 정비된 수행처에서 함께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 째는 19세기까지는 수행은 교학연구에 밝고 충분한 연령에 이른 승려들만의 특권이었는데 비해, 현대의 위빠사나 운동은 재가자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불교도가 아닌 사람들도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 이전에는 위빠사나 수행이 조직화되어 수행된 적이 없었는데 비해, 현대에는 모든 연령의 재가자, 승려 그리고 여성 출가 수행자(thila-shin)로 구성된 큰 그룹들을 대상으로 가르침이 행해지고 이들이 수행센터에 머물면서 수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5)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역사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미얀마의 위빠사나 수행 전통의 바탕에는 세 가지 기본적인 불전(佛典)이 있다. 중도로서의 팔정도의 가르침이 설해진 󰡔초전법륜경󰡕, 구체적인 위빠사나 수행의 주제가 설해져 있는 󰡔대념처경󰡕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남방상좌불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주석문헌인 5세기 붓다고사가 지은 󰡔청정도론󰡕이었다.6) 이 들 세 불전을 바탕으로 하여 위빠사나 수행은 경전에 근거를 두고 실천되었던 것이었다. 


2. 마하시 사야도의 생애


마하시 사야도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교학적인 배경과 위빠사나 수행을 접하게 된 배경 그리고 수행과 관련된 활동 등을 알아본다7).


2.1. 교학적 배경

1904년 7월 29일에 마하시 스님은 6세에 처음으로 사원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고, 12세가 되자 정식으로 사미(예비승)가 되었다. 법명은 '빛이 나는‘, ’아름다운‘ 이라는 의미의 소바나(Sobhana)였다.

사미 시절에 팔리 율장과 주석서를 배우고, 복주를 외울 정도로 공부하였으며, 19세 때에는 팔리 논장 법집론의 주석서와 팔리 경전의 복주들도 배웠다.8) 20세 때 비구계를 받은 후, 교학연구에 더욱 몰두하면서 한편으로는 실제적인 수행에 대한 관심도 높아갔다. 부처님의 고귀한 가르침이 진실되고 올바르다는 사실을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수행의 인연은 좀더 시간을 필요로 하였고, 교학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교학연구와 함께 당시 팔리 교학시험의 최고 단계인 파타마지(pathamagyi)를 통과한 후, 24세 때, 교학연구의 중심지인 북부 미얀마의 만달래이로 가서 더욱 팔리경전과 주석문헌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 만달래이에서 많은 스님에게서 교학을 배운 1년 후, 몰민(Moulmein)으로 간 마하시 사야도는 교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 시절에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과 함께 팔리 경전, 주석서, 복주를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였으며, 장부(長部 Dhīga-nikāya)와 중부(中部 Majjhima-nikāya)에 속해 있는 󰡔대념처경󰡕을 주석서와 복주문헌까지 속속들이 연구하였다. 이 경전에 대한 공부에 심혈을 기울인 데는 이유가 있었으며, 후에 불법(sāsana)에 관한 마하시 사야도의 행로를 바꾸게 되었다.

28세에 위빠사나 수행을 처음 접한 이후에도, 수행의 기본적인 초석은 교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마하시 사야도는 1941년, 38세가 되던 해에 처음 실시된 정부 주도의 법사(法師, Dhammācāriya)에 응시하여 통과하게 되었다. 자신을 위해서 수행을 하는 데는 의지할 만한 스승의 지도 아래에서 교학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수행을 하면 되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은 교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학에 정통한 사람만이 부처님 가르침의 진정한 가치에 고마운 마음을 낼 수 있으며, 이론적인 지식을 자신의 수행에 적용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에 대한 지식을 다른 사람과도 나눌 수 있는 것이다.9)


 2.2. 마하시 사야도의 위빠사나 수행

마하시 사야도는 사미 때부터 󰡔대념처경󰡕의 7년에서 7일 동안 이 수행을 하면 아라한 아니면 아나함이 된다고 하는 수행 결과에 대한 가르침에 주목을 해왔다.10)  칼라마 경에 제시된 스스로 확인한 진리만을 받아들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수행을 통한 개인적인 체험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11)

실제적인 수행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은 수행법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청정도론󰡕에 제시된 선정 수행법을 모두 선택해서 실천할 필요는 없으며, 그 방법 가운데 오직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마하시 사야도는 사띠팟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대념처경󰡕을 주석서와 복주와 함께 주의 깊고 면밀하게 공부하여 부처님 말씀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을 때까지 연구하였다. 이러한 경전에 대한 공부를 바탕으로 수행을 했더라면, 많은 진전이 있었을 것이지만, 수행이란 실제적이어서, 스승의 지도에 따라서 실천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있는 그대로의 지혜(如實智, yathābhūtaṃ ñāṇa)를 얻기 위해서는 스승을 찾아야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지도해줄 자격 있는 스승을 찾는다.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아나함의 깨달음의 상태에 몰입(果定,  phala-samāpatti)한 경험이 있다고 알려진 티론 사야도(Thee Lon Sayadaw, U Sandima 1786-1860)12)에 대한 소문이 전해지고 있었고, 마하시 사야도는 티론 사야도의 가르침의 전통을 전하는 스승을 찾게 되었다. 당시 타톤(Thaton) 지방에 밍군 제타반 사야도로 유명한 우 나라다(U Nārada, 1869-1954)스님13)이 사띠팟타나 수행을 30년 전부터 실제로 가르치고 있었다. 마하시 사야도는 우 나라다 스님의 스승은 알레토야(Aletawya, ) 사야도이며, 알레토야 사야도는 다름 아닌 티론 사야도의 여러 제자 가운데 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하시 사야도는 우 나라다 스님을 통해서 티론 사야도의 가르침의 전통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하시 사야도는 몰민을 떠나, 성지를 참배한 후에 타톤의 밍군 사야도에게로 갔다. 28세가 되던 1932년이었다. 도착하는 날부터 곧바로 수행 지도를 받고 수행에 들어갔다. 마하시 사야도는 4개월 동안 한 잠도 자지 않고 수행에 몰두하였다. 잠을 자지 않는 정진을 했음에도 몸은 건강한 상태였는데, 그 이유는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念, 擇法, 精進, 喜, 輕安, 定, 捨覺支)가 경험되면서 마음이 지극히 정화되었고, 마음의 정화에 의해서 육체가 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4)

하지만 우 나라다 사야도의 지도 아래서 수행을 할 인연은 4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은사스님이신 통와잉갈레(Taung waing gale) 사야도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몰민으로 떠나게 된 것이었다. 은사스님이 입적하시자, 제자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던 마하시 사야도가 사원의 지도를 맡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수행보다는 사원의 성격상, 마하시 사야도가 해야 할 일은 대중들의 교학 지도였다. 이렇게 몰민에서 6년간 교학지도를 하면서 지냈다. 이 후, 마하시 사야도가 우 나라다 스님에게서 다시 위빠사나 수행을 할 기회는 없었다. 마하시 사야도의 전기에서는 자세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4개월 간의 집중수행을 통해 충분한 수행의 결실을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2.3.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지도 및 저술 활동

1938년, 마하시 사야도는 잠시 몰민을 떠나 고향인 세익쿤(Seikkhun)으로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촌형제 3명을 위시로 해서 50명의 수행자에게 7개월 동안 사띠팟타나 위빠사나를 가르치게 되었고,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위빠사나 지혜의 높은 단계에 도달하였다. 교육을 해야 하는 의무 때문에 다시 몰민으로 돌아온 마하시 사야도는 교학 뿐만 아니라 수행도 지도하게 되었다. 교학 이론(pariyatti)과 수행실천(patipatti)의 두 가지 법을 결합한 것이다.15)

1941년, 처음으로 실시된 법사시험에 통과한 마하시 사야도는 위빠사나 수행을 본격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위빠사나 수행을 처음 지도했던 고향 마을 세이쿤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해는 2차 세계대전의 전화가 미얀마에 퍼지게 된 때이며, 전쟁 기간 미얀마는 많은 고통에 빠지게 되었고, 불교 활동은 중단되었다. 다행스럽게 세이쿤 마을은 전쟁의 피해를 많이 보지 않은 마을 가운데 하나여서 마하시 사야도는 위빠사나와 법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었다. 수행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은 재가자들의 요청에 의해 마하시 사야도는 위빠사나 수행법에 대한 저술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7 개월 만에 팔리 경전, 주석서, 복주에 대한 자세한 언급과 함께 실제적인 수행법을 포함하고 있는 󰡔위빠사나 수행법󰡕 2권 (Vipassanā shu nyi gyan, 로얄판으로 950쪽)을 1944년에 탈고한다. 이 책의 본격적인 출판은 전쟁이 끝난 후에 이루어졌고, 2권에서 실제적인 수행법을 다루고 있는 제 5장이 영어로 번역되어 위빠사나 수행을 외국에 소개하는 중요한 자료로 알려지게 되었다.16)

1945년에 전쟁은 끝났고, 마하시 사야도는 몰민과 세이쿤을 오고 가며 교학과 수행을 지도하였다. 1947년에 세워진 랑군의 수행센터(Thāthana Yeikthā)에 마하시 사야도는 1949년에 우연히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이 때만 해도 이곳이 자신이 지도하는 수행센터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17)

세이쿤으로 돌아온 마하시 사야도는 󰡔대념처경󰡕에 대한 미얀마어 해설서(Nissaya)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경전 구절에 대한 자세한 해설과 함께 위빠사나 수행 과정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1947년 11월 13일, 랑군에 붓다 사사나 누가하 협회(Buddha Sasanā Nuggaha Organization)18)를 세우고 초대회장이 된 우 트윈(Sir U Thwin)의 마음에는 교학은 물론 수행법을 진흥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미얀마의 상황에서 불법을 진흥하기 위한 일을 생각할 때, 교학을 진흥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행을 지도할만한 스승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협회에서 수행을 지도할 스승을 찾으면서 초대 수상인 우 누(U Nu, 1907-1995, 1948-62 재임)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우 트윈은 1947년에 북부 미얀마를 방문하여, 마하시 사야도의 명성을 접하였고, 직접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5일간 마하시 사야도의 지도 하에 300명의 수행자들과 함께 위빠사나 수행을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는 마하시 사야도가 자신이 세운 랑군의 수행센터를 이끌어줄 적임자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으며, 랑군으로 돌아와서 붓다 사사나 누가하 협회의 운영위원들에게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우 트윈의 의사는 운영위원 전원19)ꘘ͖

1949년, 마하시 사야도는 수웨보(Shwebo)마을에서 교학과 수행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우 누 수상이 이 마을을 방문하였을 때, 마하시 사야도에게 랑군의 수행센터에 오셔서 수행을 지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요청을 받아들인 마하시 사야도는 아직 건물이 그리 많지 않았던 랑군의 수행센터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마하시 사야도가 수행지도를 시작하자 이 수행센터는 마하시 수행센터라고 불리게 되었다.

1949년 12월 19일 시작된 마하시 수행센터에서의 첫 수행에는 25명이 참가했으며, 그 수는 점점 늘어났다. 새로 오는 수행자의 수가 많아지자, 수행법에 대한 법문을 모든 수행자에게 매번 해줄 수 없게 되었고, 1951년에 수행 법문이 녹음되어 새로 수행에 참여하는 수행자들이 듣고 수행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법문은 1954년에 Satipaṭṭhāna Vipassanā20)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지금까지 수행 입문서로서 활용되고 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동안에 수행자들은 자신이 수행도중에 경험한 일들을 매일 마하시 사야도에게 보고하여 점검을 받아야 했다. 매일 수행자들을 점검하는 이 방법은 마하시 사야도에 의해서 채택되고 시행되었으며, 실제적인 수행체계에서 수행을 지도하는데 가장 만족스러운 방식의 하나였다. 그리고 이러한 좋은 수행지도법 때문에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법은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21)

마하시 수행센터에서 수행한 수행자들 가운데 자질 있는 제자들에 의해 위빠사나의 씨앗은 미얀마 각지에 뿌려지게 되었고, 마하시 사야도는 이들이 수행을 잘 지도할 수 있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지도를 해주었다. 따라서 마하시 사야도의 도움으로 미얀마 각지에서 마하시 수행센터의 분원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미얀마를 벗어나 태국과 스리랑카 등지에도 분원이 생겼다.

마하시 센터 설립 23주년이 되던 1973년22), 랑군의 센터에서 수행한 수행자는 60만명에 이르렀고, 태국에서, 스리랑카, 캄보디아, 인도 등지에서 수행한 수행자의 수를 모두 합하면, 70만명에 이르렀다. 

이후, 마하시 사야도는 태국, 스리랑카, 캄보디아,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유럽, 미국 등지에 위빠사나를 전하였으며23), 1938년에 처음 위빠사나를 지도하신 이래 1982년 8월 14일, 78세를 일기로 입적하실 때까지, 44년간 위빠사나 지도는 물론 저술24);1. Anattalakkhana Sutta, Discourse on, 2

마하시 사야도 생존시부터 많은 제자들이 마하시 센터와 분원에서 수행자들을 지도해 왔으며, 현재에도 마하시 사야도의 제자들25)에 의해서 수행 지도가 이루어지고 있다.26)


마하시 사사나 예이타 수행 센터(Mahasi Sāsana Yeiktha Meditation Center)27)

일명 마하시 수행 센터(Mahasi Meditation Center)로 불린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47년 자산가 우 틴(U Thwin)씨를 초대 회장으로 하여 붓다 사사나 눅가하 협회(Buddha Sāsana Nuggaha Organization, 이하 BSNO)가 창립되어, 1949년에 수행 지도자로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가 초빙되어 마하시 수행 센터가 탄생하게 된다.

마하시 수행 센터의 탄생은 일반화 되지 않았던 위빠사나 수행법이 승려는 물론 일반 재가 신자 그리고 구미에까지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은 이 마하시 수행 센터를 중심으로 미얀마 국내는 물론 태국, 스리랑카 등의 남방 상좌부 불교 국가 및 구미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1996년 1월 3일, 필자가 조사차 방문했을 때, 마하시 수행 센터의 미얀마 국내 분원은 327개에 이르며 양곤 시내에만도 12개의 수행 센터가 있다고, 당시의 BSNO의 회장인 우 라 창(U Hla Kyaing)씨가 설명해 주었다. 외국에는 미국(5개), 영국(2개), 네덜란드(2개), 프랑스, 스위스, 일본, 스리랑카, 네팔, 태국 등지에 분원이 있다. 1996년 1월 3일 당시의 수행자의 수를 보면, 미얀마의 승려가 154명, 일반 재가 신자가 246명(男 ; 23명, 女 ; 223명), 외국인 승려 및 일반 수행자가 32명(이 가운데 한국인 수행자가 10명)이었다. 즉 수행자가 모두 432명이 있었으며, 수행을 지도하는 지도 법사 스님은 10명 이상이 있었다.

1949년 개원 이래 1995년에 이르는 46년 동안 마하시 수행 센터와 미얀마 국내의 분원에서 수행한 수행자의 수는 모두 1,181,034명에 이른다.28) 마하시 계열의 수행 센터를 포함한 대부분의 미얀마의 수행 도량에서는 교학에 대한 연구나 교육 과정은 없으며, 오직 수행만을 지도한다. 특별한 기간 동안의 수행 기간은 없으며, 1년 365일 모든 이들에게 열려져 있는 수행 센터이다. 이곳은 약 3,00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미얀마를 대표하는 수행 센터라고 할 수 있다.

마하시 수행 센터에서의 수행 지도 법사(Kammaṭṭhānācariya)가 되는 자격 조건에 대해서 묻자, 우 라 창씨는 수행의 자격 조건으로는 마하시 전통에 따라서 3년 이상의 수행 경력이 있어야 하며, 교학의 자격 조건으로는 최소한 팔리 국가시험의 고급 과정(Pathamagyi)29)을 통과해야 하며, 법사 시험의 합격자가 보다 자질을 인정받는다고 답한다. 이러한 조건에 의해서 마하시 계통의 수행 지도 법사들이 배출된다면, 교학과 수행을 함께 갖춘 수행 지도자가 배출되는 것이며, 이러한 전통은 마하시 사야도가 교학과 수행 양면에 탁월했던 것에 기인하며, 미얀마 불교가 단단한 교학적 전통 위에서 수행전통을 확립시킨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3.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30)


마하시 사야도가 지도하신 위빠사나 수행의 특징은 좌선할 때는 일차적인 관찰의 대상(primary object)으로 배의 움직임(호흡에 따라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움직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과 행선(걷기 수행)이나 행주좌와의 일상생활의 움직임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념처경󰡕에 제시된 신수심법(身受心法)의 사념처 가운데 첫 번째인 신념처를 일차적인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 수행법임을 알 수 있다.

좌선할 때, 물론 배의 움직임만을 대상으로 삼으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대념처경󰡕의 신념처에 제시된 수행 주제 가운데 하나인 네 가지 물질적인 요소(지수화풍의 四大) 가운데, 두드러진 현상으로서 움직임의 요소(風界, vāyo-dhātu)인 배의 움직임을 ‘일어남’, ‘사라짐’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알아차리라고 한 점은 스승인 우 나라다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마하시 수행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행선의 경우에도, 걷는 동작(바람의 요소)에 마음챙김(sati, 念)을 지니면서, 다리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중심으로 알아차리라고 한 점과, 일상적인 동작을 면밀하게 관찰하라고 한 점은 마하시 수행법을 특징지울 수 있는 수행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움직임의 요소를 일차적인 관찰의 대상으로 하면서, 기본적으로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이다. 수행의 대상은 󰡔대념처경󰡕의 가르침에 의해 제시되어, 네 가지 물질적인 요소(四大)와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일상적인 움직임과 오온(五蘊)과 눈, 귀, 코, 혀, 몸, 마음(안이비설신의)의 여섯 감관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로 수행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모든 현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마하시 수행은 󰡔청정도론󰡕Visudhimagga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신적 현상과 물질적 현상을 분명히 구별하는 지혜(명색구별지, nāma-rūpa-pariccheda-ñāṇa)에서 시작하는 16단계의 위빠사나 지혜의 전개로 이어진다.

이러한 마하시 수행법은 특정한 선정 수행(사마타)을 미리 닦지 않고 곧 바로 위빠사나 수행을 실천하기 때문에, 순수한 위빠사나(suddha-vipassanā)31)라고 불리며, 사마타 수행의 잘못(선정에 머물러 관찰력을 기르지 않는 잘못)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마하시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초기불교의 이상인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는데 있다. 이 수행법이 󰡔대념처경󰡕을 근거로 하고, 󰡔청정도론󰡕 등의 상좌불교의 주석서(aṭṭhakathā)에 많은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초기불교의 정신을 이은 상좌불교(Theravāda)의 소중한 수행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3.1.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의 연원32)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의 특징은 좌선할 때, 일차적인 관찰의 대상으로 배의 움직임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이 수행법을 일반화시킨 분은 마하시 사야도의 스승인 우 나라다 스님이다33)r-spacing:-0.600px;text-align:left;'>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의 특징은 좌선할 때, 일차적인 관찰의 대상으로 배의 움직임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이 수행법을 일반화시킨 분은 마하시 사야도의 스승인 우 나라다 스님이다<A HREF="#FOOTNOTE33"><

마하시 사야도가 이 방법을 가르친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 마하시 사야도는 무엇이든지 몸과 마음에서 생겨나는 현상을 관찰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수행자들은 무엇을 관찰해야 할지 몰랐고, 따라서 관찰할 대상을 찾았다. 수행자들이 마하시 사야도에게 관찰할 대상에 대해서 질문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복부의 일어나고 꺼지는 움직임에 대한 관찰은  지수화풍의 네 가지 요소[四大]를 관찰하는 항목이 있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 [身念處]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권하였다. 이렇게 지도를 받은 수행자들은 배의 움직임을 기본적인 관찰의 대상으로 하여 몸과 마음에서 생기는 현상을 관찰하게 되었고, 그 결과 마음집중이 잘 되었다. 마하시 사야도는 이러한 이유와 함께 우 나라다 스님이 이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하였다. 배의 움직임은 분명한 현상이어서 일부러 찾을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마음집중과 위빠사나를 통해서 쉽게 이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것이 마하시 사야도의 주저인 󰡔위빠사나 수행법󰡕  (Vipassanā shu nyi gyan)과 마하시 수행센터에서 기본적인 관찰의 대상으로 배의 움직임을 가르친 이유이다.

하지만, 이 배의 일어남-사라짐을 관찰하는 수행법이 기본적인 관찰의 방법으로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수행자에게 이 한 가지 방법만을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아나파나(ānāpāna, 入出息)를 수행하던 수행자가 오면, 코끝을 관찰해도 좋다고 허락했다고 한다34). 마하시 사야도와 제자들은 수행자들이 쉽고 편하게 위빠사나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35).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수행은, 집중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수행자와 위빠사나 수행을 해 본적이 없는 수행자들에게 가르쳐졌다. 경험이 있는 수행자들은 여섯 가지 구멍(여섯 감각 기관)을 관찰할 것이다36). 배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움직임을 관찰하는 이 사띠팟타나 수행을 통해서 10만명이 넘는 수행자들이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을 구별해서 보는 지혜와 이 현상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지혜를 얻는데 이르렀다.37)


3.2. 실제적인 수행법

마하시 사야도의 실제적인 수행은 예비적인 마음집중의 단계를 거쳐서 본격적인 위빠사나 수행으로 좌선과 행선 그리고 일상행동의 관찰로 진행된다.

위빠사나 수행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예비적인 단계로 간단하게 네 가지 보호38)에 대해 마음을 집중한다. 수행자의 심리적인 안정과 정진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네 가지 보호하는 마음집중은 1)부처님에 9가지 덕에 대한 마음챙김(佛隨念, buddhānusati), 2)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자관(慈觀, mettā), 3), 육체의 부정관(不淨觀, asubhasaññā), 4)죽음에 대한 마음챙김[死念, maraṇasati]이다39).


3.2.1. 기초적인 단계

기본적인 수행 - 1 단계 : 배의 움직임이라는 일차적인 대상 알아차리기

먼저 좌선의 경우 기본적인 수행의 대상은 배의 움직임(The movement of rising and falling of abdomen)이다. 처음에 배의 움직임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으면 두 손을 배에 대고 그 움직임을 느끼면, 바로 숨을 들이쉴 때는 배가 불러오고, 숨을 내쉴 때는 배가 꺼지는 것이 분명해 질것이다. 이 때 관찰하는 대상은 배의 형태가 아니라, 배의 움직임에 의해 생기는 육체적인 압박감이다. 수행이 진전되면 움직임의 방식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이 방법은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수행자가 마음 챙김(주의 집중)과 마음집중과 지혜를 향상시키는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정신적 육체적인 현상들을 아는 능력은 위빠사나 수행이 충분히 향상되었을 때만 얻어질 수 있다. 배의 움직임은 일부러 찾을 필요가 없이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의 하나이므로, 실제로 초보 수행자가 마음을 이 움직임에 고정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배가 일어나고 꺼지는(사라지는) 움직임을 완전히 알아차리면서(awareness) 이 수행을 계속한다.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말로 반복하지 말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실제적인 과정을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되 뇌이면서 알아차려야 한다. ‘일어남’, ‘ 사라짐’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말해서는 안 되며,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말하면서 관찰해야 하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사실 단어는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실제적인 배의 움직임과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느낌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행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마음속으로 관찰하는 대상에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관찰하려는 대상에 마음이 도달하지 못하게 되어 대상을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40). 따라서 수행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명칭을 사용해서 마음속으로 그 명칭을 되 뇌이면서 관찰하는 것이다41).

배의 움직임을 일부러 만들어내기 위해서 호흡을 깊게 하거나 빠르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호흡을 하면 쉽게 피로해져서 수행에 방해가 된다.


기본적인 수행 2단계 - 수행 도중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차리기

배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다가 도중에 정신적인 활동(상상이나 생각들)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순간에 그 현상들을 알아차린다. ‘상상’, ‘생각’, ‘의도’, ‘헤맴’ 등등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알아차린다(note). 이처럼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mental vision)은 생겨날 때마다 알아차려서 사라질 때까지 관찰한다. 사라진 뒤에는 다시 일차적인 알아차림의 대상인 배의 움직임으로 돌아온다. 침이 입안에 고이면, 고인 것을 알아차리고, 삼켜야겠다는 의도가 생기면, 의도를 알아차리고, 삼키는 과정을 ‘삼킴’ 하면서 알아차린다. 그리고 다시 배의 움직임으로 돌아온다. 목을 바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 목을 바르게 하는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목을 펴준다. 이렇게 모든 움직임, 행동을 마음으로 알아차린 후에 다시 배의 움직임으로 돌아온다.


기본적 수행 3 단계 - 몸의 느낌을 관찰

앉거나 눕거나 한동안 고정된 자세로 수행을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