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짧은 휴가를 호두마을에서 지냈다. 시간이 없어서 주말 수행신청하며 2박 3일. 짧았는데도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나름대로 충분한 맛(?)을 보았고, 그 뒤로 힘들거나 지칠때 떠올리는 ‘그리운 그 곳’이 되었다.

 3월 초, 나는 어떤 결정을 번복하는 일에 당면했다. 내 인생의 방향, 내 정체성에 관련된 번복이라 몹시 힘겨웠다. 지난 10년을 붙잡고(희망으로 삼고) 오로지 의지하며 스스로를 추스르던 ‘것’을 스스로 버리는 결정이 너무 힘들고, 감내 하기에 벅차 울고 불고 하기를 여러 날...

 이곳에 오면 내 이 괴로움을 떨쳐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내가 ‘나 다운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살고 싶은 삶, 내 꿈, 희망...’이 너무나 오래되고 끈질긴 집착이란 걸 알고, 그것을 놓았지만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납득되고 이해되고 옳고 잘한 일이라 믿어지지만, 감정이 추스려지지 않았다. 나라고.. 희망이라고.. 기쁨이라고.. 유일하게 붙잡고 있던 끈을 놓으라고 떠밀리는 걸 느끼며, 발 밑에 나를 지탱하던 땅이 꺼지는 것을 어떻게 마음이 견디어 내겠는가? 상처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내 자아는 아프고 아팠다. 괴로움이, 평소에 없던 두통도 만들었고 원망과 분노가 맘 속에 쌓여 시시때때로 침울해지며 무기력해졌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여기와서 느낌과 내 감정이 분리되고, 사실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내가 떨쳐낸 집착이, 집착과 탐욕, 갈애였고, 나는 바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과 지지, 격려를 얻었다. 결국 정체성이란게 유신견에 불과하다는 멋지고 통쾌한 가르침이 무릎을 치게 한다. 이번일로 쌓인 괴로움 뿐만 아니라 오래된 슬픔, 원망, 죄책감까지 마음속을 대청소 해낼 수 있어서 시원하고 가볍다. 자유롭고 편안하다. 호두마을이 여기 있다는 게 너무나 고맙고, 올수 있어서 기쁘고, 혜진스님을 뵙고 지도를 받을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앞으로도 마음챙겨 괴로움이 없고, 몸과 마음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때때로 대청소 하러 올께요!

고맙습니다.

                                                                              - 익명